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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배우는 삶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27 실험적 미술 20세기 전반기

by Holly홀리 2021. 8. 29.

곰브리치 미술사 18 미술의 위기 16세기 후반:유럽

곰브리치 미술사 27 실험적 미술 20세기 전반기

 

현대 미술도 과거의 미술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의 특정한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건축 분야는 새롭고 지속적인 현대적 양식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분야였다.

20세기 건축에 있어 미래는 옛 것이건 새로운 것이건 양식이나 장식의 편견에서 탈피해 새로워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젊은 건축가들은 건축이 예술fine art에 속한다는 관념에 집착하지 않고 장식을 거부했으며 건축을 그 목적에 비추어 새롭게 보자고 제안함

 

건축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법은 미국에서 일관성있게 나타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미국 건축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0-1959)

주택에서 중요한 것이 외관이 아니라 방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편하게 설계하고 거주자의 요구가 잘 맞는다면 건물 외관도 그럴듯하게 보일거라 확신 - 당시에는 혁신적인 견해

기존 낡은 건축 습관 중 특히 엄격한 좌우대칭을 요구하는 전통적 건축 방식을 탈피

이를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라는 말을 사용 - 건축물이 거주하는 사람의 요구와 지방의 특색에 따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발생하고 성장한다는 의미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 페어오스크 가 540번지 1902년, 양식을 배제한 주택

 

바우하우스 기본 이념 - 기능주의(functionalism)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야만 그에 따라서 형태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신념

현대 건축의 찬반 논쟁의 중심이 되어왔던 실험적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데사우가 설립한 바우하우스(Bauhaus)

미술과 기계 기술이 19세기처럼 분리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상호 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워졌다.

철제 파이프 의자나 이와 비슷한 일상용 가구가 처음 고안된 곳도 바로 이 학교에서 였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상상력을 활용하고 대담하게 실험하되 그 설계의 목적을 잊지 않도록 가르쳤지만 후에 나치의 탄압으로 폐쇄

 

발터 그로파우스 설계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1926년

 

어느 누구도 자기가 본 것을 그리지 않았다.

화가는 무엇을 실험하고 왜 자연 앞에 앉아서 자기 능력을 다해 그것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 화가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단순한 요구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미술은 그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원시 시대 미술가들: 실재하는 얼굴을 모사하기보다는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얼굴을 만들어 냄

이집트인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알고 있는 것을 그림 속에 표현

그리스, 로마 미술: 도식적인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중세 미술: 종교적 주체를 다루기 위해 도식적인 형태를 이용함

중국 미술: 명상을 위해 활용

 

눈으로 본 것을 그린다는 관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

과학적 원근법, 스푸마토(sfumato) 기법, 베네치아 파의 색채 및 움직임과 표정 묘사는 미술가가 세계를 재현하는 수단을 풍부하게 해줌

 

인습의 아성, 인습은 미술가로 하여금 실제로 본 것보다 배워서 아는 형태를 그리도록 했다. 

19세기 반항아들은 모든 관습을 쓸어버리자 제안

마침내 인상주의자들이 '과학적 정학성'을 갖추고 시각의 움직임을 화폭에 담을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

 

인상주의자들 이후 극복하려 했던 세대들의 어려움

진정한 감각적 인상이란 무엇인가?

대상에 대한 지식 또는 믿음에 의해 형상이 잡힌다는 사실

우리는 항상 인습적인 선이나 형태를 사용해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표현 주의 Expressionism' 미술

원시미술의 목적에 자연에 대한 모방이 들어있다.

주술적인 것들의 양식은 새로운 미술운동이 반 고흐, 세잔, 고갱의 표현성과 구성, 단순성의 추구와 일맥상통 하는 것이었다.

사물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은 보는 방식은 물론 기억하는 형태를 변화시킨다. 같은 장소라도 기쁠 때와 슬플 때 다르게 보인다.

20세기 미술가들은 창안자가 되기위해 독창성을 추구해야 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비명 The Scream> 석판화 

유일한 초점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얼굴을 향해 흐르는 것처럼 보임

표현주의 미술에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는 이유는 아름다움과는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비명> 1895년 석판화

독일 미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

<궁핍>

가난한 이들과 학대받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 그들의 주장을 앞장서거나 옹호하려 했다. 

방직공들이 당면한 비참한 처지를 다룬 희곡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삽화, 자연주의적 표현 기법

 

케테 콜비츠<궁핍> 1893-1901년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표현주의 운동은 독일에서 풍요롭게 전개되어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

<예언자 The Prophet>

 

에밀 놀데 <예언자> 1912년

 

 

표현주의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

<불쌍히 여기소서! Have pity>

에른스트 바를라흐 <불쌍히 여기소서> 1919년

 

오스트리아의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사물의 밝은 측면만을 골라서 보는 거부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화가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

오스카 코코슈카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 1909년

 

추상미술: 표현주의 + 입체주의 영향으로 발전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당시 독일 뮌헨에 살며 순수한 정신성을 지닌 참신한 미술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재건하기를 바랬던 신비주의자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최초로 시도하여 전시하는 용기를 보여줌

이로써 추상미술(abstract art)라고 불리는 것이 처음 등장

<카자크 인들>

바실리 칸딘스키 <카자크 인들> 1910-11년

20세기 전반 미술에는 고흐, 뭉크, 케테 콜비츠, 에밀 놀데, 오스카 코코슈카, 바실리 칸딘스키 등이 속한 표현주의

감정 표현을 중시,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은 감정 표현을 위해 이용되야 한다고 주장   ​  

 

야수파 1905년 젊은 화가들 파리 전시회 레 포브(Les Fauves) 야수, 야만을 뜻하는 명칭으로 불리게 됨

자연 형태를 무시하고 격렬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식탁 (붉은 색의 조화)>

 

앙리 마티스 <식탁(붉은 색의 조화)> 1908년

 

스페인 출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데셍 교사의 아들,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의 신동

19살 파리로 가 표현주의자들이 즐겨다루던 주제 거지, 부랑아, 서커스 광대 등을 그리다 원시 미술을 연구 시작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얼굴이나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전 화가들은 자연의 형태를 평면적 패턴으로 단순화 시켰으나, 

평면성을 피하면서도 사물을 단순하게 그리고 동시에 입체감과 깊이감을 유지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피카소로 하여금 세잔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한 것도 바로 이런 문제.

세잔은 자연을 구, 원추, 원통의 견지에서 보라고 충고하였다.

피카소는 세잔처럼 가능한 한 소재가 가진 확고하고 변함 없는 모습을 포착하여 그려보자. 

우리의 진정한 목표가 어떤 것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받아들이자. 

 

신체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과 마음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여러각도에서 본 바이올린 형태를 한순간에 생각할 수도 있고 그 형태들 가운데 어떤 것은 분명하게 떠오르고 어떤 것은 흐릿하다. 

이상스럽게 뒤죽박죽된 형상들이 실재의 바이올린을 더 잘 재현할 수 있다. 

<바이올린과 포도>

파블로 피카소 <바이올린과 포도> 1912년

파블로 피카소 <어린 소년의 두상> 석판화 1945년
<두상> 1928년
파블로 피카소 <새> 1948년 도자기 접시

이집트인의 원칙- 사물의 특징적 형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각도에서 그리는 것 - 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줌

서로 연결되지 않은 형태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것처럼 보여도 결코 혼잡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얼마간 균등한 요소로 구성하고 있어 화면 전체가 일관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그는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색적인 발견을 하게 한 상황이야 말로 20세기 미술의 가장 전형적인 양상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바 모든 시대의 미술가들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깊이감을 재현한다는 회화의 본질적인 역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입체주의는 이러한 역설을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이 역설을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야수파는 색채가 주는 즐거움을 위해 명암법을 희생시켰던 반면에, 입체파 미술가들은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은 그런 즐거움을 단념하고 오히려 ‘형식적인’ 입체 표현의 전통적인 기법과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옛시절 화가들에겐 주제가 제일 우선적이었던 것 - 주문을 받고 작업

주문이 줄자 화가 자신이 직접 주제를 선택해서 그려야만 했다. 그림을 팔아줄만한 고객들이 좋아할 주제를 집중적으로 그림

 

스위스의 화가, 음악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자연에 충실한다는 것의 그의 신념

자연 그 자체가 예술가를 통해 창출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

<조그만 난쟁이의 조그만 이야기>

파울 클레<조그만 난쟁이의 조그만 이야기> 1925년

루마니아 출신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년)

미켈란젤로의 조각 개념: 대리석 속에 잠들어 있는 듯한 형태를 끄집어 내어 원석의 단순한 윤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의 형상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브랑쿠시는 조각가가 돌덩이를 변화시켜 인물상을 암시하게 만들면서도 원석의 본래 모습을 얼마만큼이나 보존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콘스탄틴 브랑쿠시<입맞춤> 1907년

네델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네델란드 화가 사이에서 '회화가 건축물과 같은 일종의 구조물로 될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 제기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우주의 객곽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 있는 회화를 열망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 1920년
몬드리안

영국 미술가 벤 니콜슨(Ben Nicholson: 1894-1982)

원이나 사각형과 같은 단순한 형태들 간의 관계에 관심

깊이를 다르게 하여 돋을새김으로 새겨놓음

1943년 <부조>

벤 니콜슨 <부조> 1934년

 

미국 출신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1898-1976)

우주의 수학적 법칙을 보여주는 미술을 갈구

우주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균형을 잡아주는 신비스러운 힘에 의해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균형에 대한 관념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을 만들게 하였다.

균형이라는 말은 더이상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많은 생각과 경험을 통해 섬세한 평형이 창출된 것

<어떤 우주> 1938년

알렉산더 콜더 <어떤 우주> 1934년

 

현대미술가들의 관심 No 주제, No 형태, Yes 창조와 사물

그럴 듯 하고 영속적인 어떤 것,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을 창조하고자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

돌로 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돌을 통해 느끼고 그 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다.

돌을 사용해서 여인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인을 암시해주는 돈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20세기 미술가들이 원시 미술의 가치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태도 덕분

 

헨리 무어 <기대누은 인물> 1938년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소묘나 인상주의 기법 등을 전혀 모르고 사물의 전부를 묘사했다.

그의 작품에는 힘차고 솔직하며 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조제프 브뤼머의 초상> 1909년

앙리 루소 <조제프 브뤼머의 초상> 1909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마을 풍경이나 악기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음악가와 같은 재미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들은 진정한 민속 미술이 지닌 묘미와 어린아이같은 순진한 경이감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루소와 '일요 화가 Sunday Painter'들이 독학으로 터득한 소박한 방식에 감탄한 화가들은 표현주의나 입체주의의 복잡한 이론을 불필요한 짐으로 생각하고 팽개쳐 버림.

그들은 현실적이고 진솔해져서 평범한 사람들도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그리는 것이 그들의 자랑이었다.

 

마르크 샤갈<첼로 연주자> 1939년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2-1942)

자기 고향 아이오와의 아름다움을 의식적으로 단순하게 그렸다.

<돌아오는 봄 Spring Tuming>이라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보이는 풍경을 연구할 수 있었고 그의 작품에 장난감 나라의 풍경과도 같은 매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렌트 우드 <돌아오는 봄> 1936년

 

그리스 태생 이탈리아 계 미술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 

예기치 못한 것이나 완전히 수수께끼 같은 것과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낯선 느낌을 포착하고자 했다.

<사랑의 노래>1914년

 

조르조 데 키리코 < 사랑의 노래> 1914년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 1898-1967)

꼼꼼하고 정확하게 그린 그의 수많은 꿈과 같은 형상들에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달아 전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년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초현실주의자' - 현실 그 자체보다 더 현실적인 어떤 것을 창조하려는 열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

 

르네 마그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년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ntti: 1901-66)

대부분의 초현실주의자들은 깨어 있는 사고가 마비되면 우리들 내부에 숨어 있는 유아성과 야만성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작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예술은 완전히 깨어 있는 이성에 의해서는 결코 생산될 수 없다고 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프로이트의 학설에 근거하고 있다. 비이성만이 우리들에게 예술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두상> 1927년

알베르토 자코메니 <두상> 1927년

스페인 출신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89) 

꿈속에서 일어나는 이상야릇한 혼돈 상태를 모방하려 했다.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것만 같은 으시시한 느낌을 준다.

<해변가에 나타난 얼굴과 과일그릇의 환영> 1938년

 

살바도르 달리 <해변가에 나타난 얼굴과 과일 그릇의 환영> 1938년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미술이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는 적지 않게 우리들 자신, 일반 대중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느냐 아니냐에 따라, 편견을 갖느냐 이해심을 갖느냐에 따라 미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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